현재를 ‘현재’로 만들기


김노암(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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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가 조우하면 뭔가 의미심장한 사건이 벌어질 것 같다. 그 만남이 어떤 특별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면 더더욱 의미심장할 것이다. 작가가 하나의 대상에 의미와 형식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매우 성공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미덕이다. 대상은 비로소 스스로 서있는 독립된 무엇인가로 변화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흑백의 사진이미지와 현재를 은유하는 칼라 이미지의 병치와 나열은 그 자체로 독립적일 수 없다. 한 장소, 한 건물, 한 기념물이 의미심장하기 위해서는 ‘현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밖의 것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거형의 문맥, 이야기들, 사건들이 이미 있었어야 한다. 그것이 단지 망각되어 있을 지라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망각의 세계이고, 대상 없음의 세계이다. 망각은 삶을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망각을 통해서, 혹은 망각과 유사한 효과를 통해서 비로소 온전히 눈앞의 대상과 사건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작가들이 다루는 몰입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억과 망각, 의미와 의미 없음의 변증법말이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이미지들 간의 신비한 변증법적 운동이야말로 현재를 구성하는 요체다.

한편 이미지의 세계에서 과거란 실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가 온전히 현재가 되기 위해서 과거와 미래는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현재’라는 조어는 불가능한 순간을 표현한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결코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이 가능해진다. 현재의 자리에서 바라본 과거는 결코 실제 그 당시의 현재와 동일하지 않다. 다만 유사할 뿐이다. 이미 오래전 지나버린 현재와 유사한 것, 그것이 ‘역사적 현재’로 표현된다. 이미지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도전이다.

그러기에 ‘역사적 현재’란 ‘모든 역사는 현대사(B.크로체)’로 번역할 수 있다. 과거의 의미, 과거의 이미지는 현재의 투사이며 현재를 구성하는 기제가 된다. 안성석의 작업은 외적 시간의 단절을 내적 시간의 문제로 돌려놓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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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주목한다는 것은 주변의 사물로부터 분리하여 관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섬세하고 신중한 태도가 요구된다. 선택된 대상이 아닌 나머지 사물들을 의식에서 모두 배제하여 무의식의 단계로 넘겨버린다. 이 과정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그 사물들과 아무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관계가 의식에 걸러지지 않고 무의식적 차원에서 벌어진다는 의미일 뿐이다.

현재든 과거든, 현재와 과거의 관계이든 그것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의미 없음의 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대상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나는 문화들 간의 대화는 하나의 커다란 오해라고 생각한다.(엘렌 베지)” 그런데 단지 문화들 간의 대화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사물이라도 다른 시간을 사는 대상일 경우, 현재와 과거의 대화 또한 하나의 커다란 오해인 것이다. 문화란 삶과 연동하며 한 시절의 삶과 다른 시절의 삶은 유사함 그 이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안성석의 작업은 현재와 과거를 상호 호출하여 어떤 의미를 만드는 과정이자 동시에 ‘만남’과 ‘관계’가 본래 오해라는 것을 함축한다.

“언어에는 유사성에서 동일성을 연역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버트란드 러셀)” 유사성과 동일성이 만나는 사건은 어떤 신비한 비의가 필요하다. 같은 사물이되 같은 대상은 아닌 것이다. 그 대상들 간의 거리는 은하계의 별 만큼 멀며 동시에 그 간격을 메우는 것은 정신의 몫이다. 거기에 이미지의 마술이 작동한다. 작가에게 대상은 이미지와 형상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형상으로 사유한다(들뢰즈)”. 이미지와 형상은 단지 역사와 과거를 또 그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려는 것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오늘날 집단 창작과 집단 기억으로서 예술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과거 예술은 미적 이념이 아닌 그 시대의 지배계급의 정치적 메시지나 이데올로기로 봉사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것은 이미 정치-예술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비록 본격적인 정치-예술이 아니라하더라도 예술이 기억과 혹은 역사와 만날 때, 예술은 불가항력적으로 그 시대의 가장 지배적이며 가장 강력한 이념과 이미지-정치와 만나게 된다. 안성석의 작업에는 과거의 것에 대한 역사적 시선을 정치적 시선으로 바꾸는 이미지의 트릭이 있다. 거기에 미적 시선이 교묘하게 연동한다. 역사와 정치와 미학 사이에 작동하는 운동이 이미지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의식에서 벌어진다. 사물과 사물의 이미지에 은폐되어 있는 힘이 작동한다.

현대예술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기념물이 결코 하나의 기억이나 의미로 서술되지 않는다. 기념은 특별히 공적인 세계를 구성한다. 사적 영역을 상징하는 예술일수록 공공의 기억은 애초부터 비범한 결합이고 조우이다. 시각이미지가 예술과 정치와 역사의 간극을 교묘하게 균형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에 현재는 온전히 ‘현재’가 되고, 안성석의 작업은 그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